제주도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합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용암 섬과 유채꽃,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등 다양한 자연의 경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슬픈 역사도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제주 4.3 사건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일어난 민간인 대학살 사건으로,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화합을 위해 조성된 곳이 제주 4.3 평화 공원입니다. 저는 이번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제주 4.3 평화 공원을 방문했는데요, 그 곳에서 본 것과 느낀 것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주 4.3 평화 공원
제주 4.3 평화 공원은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40만 ㎡에 달하는 부지에는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과 위령제단, 각명비, 추모승화광장, 위패봉안소, 위패봉안관, 행불인식표석 등이 있습니다. 또한 4.3 사건의 역사적 진실과 의미를 알 수 있는 4.3 평화 기념관도 있습니다. 4.3 평화 기념관은 4.3 사건의 발발, 전개, 결과, 진상 규명 운동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6개의 상설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 기획전실, 개가 자료실, 영상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관은 역사를 담은 그릇을 모티브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역사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들이 3.1절 기념 행사에 참여하던 중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제주 도민들은 정부의 탄압에 저항하고 자치를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반정부 세력의 반란으로 간주하고 제주도를 철저히 진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는 무장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태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정부는 군인과 경찰, 서북 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를 파견하여 제주도를 초토화 시켰습니다. 토벌대는 무장 봉기와 관련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동굴에 숨은 사람들을 질식 시켰습니다. 이런 학살은 한라산 입산 통제가 풀린 1954년 9월 21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습니다. 희생자들의 나이는 갓난아기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했으며, 여성과 노인의 비율은 33%에 이르렀습니다. 제주도의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가옥은 4만 여 채가 소실되었습니다. 제주도는 황폐화되고, 희생자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진상은 감춰졌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 규명과 사과
제주 4.3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 상황에서 잊혀지고 왜곡되었습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고통과 억울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제주 도민들은 4.3 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민간단체들이 4.3 사건의 희생자와 유해를 발굴하고, 역사적 사실을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에는 정부가 4.3 특별법을 제정하고, 4.3 사건 진상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200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4.3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2008년에는 제주 4.3 평화 공원이 개장 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4.3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우리 역사의 상처이자 교훈입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의 전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은 4.3 사건의 역사를 담은 그릇을 모티브로 한 건물로, 지하 1층과 지상 4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에는 4.3 사건의 배경과 원인, 시작과 전개, 결과와 후유증, 진상 규명과 사과, 평화와 화합 등을 다루는 6개의 상설 전시실이 있습니다. 전시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영상실에서 4.3 사건에 대한 간략한 영상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상은 약 15분 정도로, 4.3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면 전시관을 관람할 때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전시관의 입구는 동굴 터널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는 4.3 사건 당시 토벌대의 학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제주 도민들이 동굴에 숨어 살았던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동굴을 지나면 첫 번째 전시실인 역사의 동굴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4.3 사건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비문을 새기지 않고 누워 있는 백석이 있습니다. 이 백석은 4.3 사건의 진상이 아직도 의문 투성 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 전시실은 흔들리는 섬입니다. 여기에는 4.3 사건의 발발 전, 제주 도민들이 겪었던 역사적 상황과 자치 열망을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의 국제 정세, 미군정의 지배, 1947년 3.1 발포 사건, 3.10 총파업과 탄압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주 도민들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고, 자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 전시실은 바람 타는 섬입니다. 여기에는 4.3 사건의 시작과 전개 과정을 보여줍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면서 무장 봉기가 발발했습니다. 이후 미군정은 제주도를 철저히 진압하기 위해 토벌대를 파견했습니다. 토벌대는 무장대 뿐만 아니라 무장 봉기와 관련 없는 민간인들도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살해했습니다. 5.10 단선, 단정 반대 사건, 오라리 방화 사건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네 번째 전시실은 불타는 섬입니다. 여기에는 4.3 사건의 결과와 희생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제주도에서는 무차별적인 학살과 방화가 이루어졌습니다. 4.3 사건으로 인해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제주 도민이 희생되었고, 가옥 4만 여 채가 소실되었습니다.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유물, 다랑쉬 동굴 특별 전시관 등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전시실은 흐르는 섬입니다. 여기에는 4.3 사건 이후의 후유증과 진상 규명 운동, 대통령 사과, 유해 발굴 등을 보여줍니다. 4.3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 상황에서 희생자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숨죽여 살아야 했습니다.1987년 민주화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6월 10일 전남대학교 학생 이한열 의 희생으로 시작되었고, 6월 26일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이 폭로 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와 집회를 벌였고, 정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은 계속되었고, 6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은 민주화 개혁 6·29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은 직선제 대통령 선거제와 비례 대표제 국회의원 선거제를 도입하고, 국가보안법과 언론법을 개정하며, 비상 계엄령을 해제하고, 정치범을 사면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선언은 민주화 운동의 승리로 인식되었고, 국민들은 환영하고 지지했습니다. 이후 12월 16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이렇게 1987년 민주화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 연락처: 064-723-4344
- 개관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휴무: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 관람료: 무료
- 교통: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 4.3 평화 공원 정류장에서 하차